작가의 詩 288

이름 없는 여인 되어

노천명 어느 조그마한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 엮어 마당에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린 마을 놋 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짓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작가의 詩 2020.10.08

6월의 고향집

뒤란 목단 홀로 검붉은 울음 뚝뚝 흘리는 6월 돌담의 아랫도리엔 이끼가 수북하고 버짐 핀 숫돌의 얼굴이 뀅하다 파르라니 날 선 낫에 엄지를 대 보며 아버지의 눈가엔 흡족한 주름이 잡힌다. 바소쿠리 가득 지고 온 소꼴 누렁이 앞에 부려 놓으시고 널찍한 등판을 쓰다듬으셨지 밤 물 냄새 구수하던 부엌은 거미줄만 살판났다. 누렁이도 아버지도 하얀 머릿수건 엄마도 다들 어디로 가고 마당 가득 정적만 들어차 있구나 장미를 기다리다 소명 최영옥 시집에서

작가의 詩 2020.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