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품 4764

625 한국 전쟁

625 한국 전쟁 1950년 내가 초등학교 5학년 . 어려서 한국 전쟁 을 하의도 에서 었다 . 북한 괴뢰군이 하의도 까지 점령을 하고 후퇴 할 때는 하의도 면 사무 소 를 불 테 우 고 물러났다 나는 어려서 그 때 소를 먹이려고 소를 산에서 놓아 먹이고 있을 때 나는 그 현장을 보았다 우리는 피난 갈 곳도 없고 최남단 천사의 섬 그 당시 928 수복 후 국회의원 장홍염 이 학교 강당에서 학생들의 입회 하에 가담자들을 즉결 심판을 한 것을 보았다.. 내가 74세인데 아직도 남북이 통일을 보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 좁은 나라에서 남북이 대 치 하다니 언제나 통일이 올 것인지? 죽기 전 에 통일이 여 오라 ! 평화스런 민족이 였 으면 . 김 구선생의 첫째도 소원은 통일 둘째도 셋째도 통일..

나의 창작품 2013.01.13

목포의 삼학 도

목포 앞 삼학도 바닷가 언덕길을 올라가노라면 세 개의 섬이 세 마리 학이 내려앉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삼학도랍니다. 유달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는 젊은 장수를 세 처녀가 흠모하다 죽어 학으로 환생했지만 장수가 쏜 화살에 맞아 죽은 자리에 섬 세 개가 솟아올랐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조선 시대엔 목포에 땔감 나무를 대던 시 지 대. 유달 산 과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명승지입니다. 고아도 는 이 순신 장군이 싸우든 유적지 가 있으며 갓 바위는 경관이 아름다운 갓 바위 불후의 명곡 목포의 눈물 이 난영의 노래 비가 있으며 지나가는 배에서 흘러나오는 목포의 설음 이 흘러나오면 더한층 운치가 있다. 김 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의 공원 육성이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내가 중학교 입학하고 처음으로 소풍을 가기도 하였..

나의 창작품 2013.01.13

추억의 운악산 (追憶의 雲惡山)

2012년 나는 1월부터 3월까지 퇴직하고 3개월을 집에서 쉬 면서 재 충전의 기간 이 였다. 노동부 워크냇 아는 사람들 갖은 방법으로 알아보다 경기도 가평에서 골프장 건설현장에서 하루 일당 4만 3천 원 받고 잔디 심는 일을 하기로 하였다. 운악산은 경기도 가평 군 하면 에 있는 관악 치악 화악. 송악 중부 지방의 오악 중 하나다. 한북 정맥은 포천 군과도 경계를 이루는데 운악산을 중심으로 하여 국방봉 1168m 강씨봉 830m천849m 원통산 567m 주금산 813m 등이 솟아있다. 한편 한북정맥의 본 줄기에는 속 하지 않지만 운악산과는 조종천을 경게로하여 명지산 1267m 매봉 927m등이 별도의 산줄기를 이루며 뻗어있다. 운악산은 해발 935m이며 기암과 봉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천연 고찰 현등사..

나의 창작품 2013.01.12

공포의 도교

공포의 도교 2011년 3월 11일 쓰나미 일본 동북부 이와기 항구 초토화 120년 만의 강진 8.8의 무서운 지진 10m이상의 쓰나미 태평양 쓰나미 로 인해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 화면으로 분수없을 정도의 참혹한 장면을 보니 재앙의 무서움 물에 잠긴 미야기현.지진 이란 말만 들었지만 이렇게 무서운 것인줄 미처 몰 랐 고 놀랐다 . 일본의 지진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그렇게 까지 무서운 것을 새삼 알았다 . 우리나라도 약간 흔들리는 것은 알았지만 …….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살기 좋은 이 강산을 만들 기위해 노력 해야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 어제는 어떤 분이 와서 일본이 지진으로 난리라고 해서 보지 않는 텔레비전을 켜보았다 . 이럴 수가 있을까? 그냥 쓰러버린 10메타 이상의..

나의 창작품 2013.01.10

76회 생일

나는 호랑이띠 무인생이다. 조용한 남쪽 바다 천사의 섬 하의도 에서 테어나 서당에서 3년 대동화 전쟁말 625사변 419혁명 516 군사 정변 실페와 성공을 맛 보며 살아온 인생 ! 머리엔 새월의 흔적 내 인생 황혼에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만 남는다. 온갖 풍파 속에서도 열심히 능력껏 살아온 자신 부그럼 없이 살아온 내 인생사 76회 생일 ! 이것이 인생사 인것을 아쉬움만 남 는다.

나의 창작품 2013.01.09

52년만에

52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 李 文一 이가 목포 에서 살고 있는 친구 서울 에 와서 전화가 왔다 . 너무 반가워 .만나자고 하여 기다렸다 .나는 야근 이여서 일찍 만나고 나가야 할 것이 걱정이다 .나도 문일 이 친구는 잊 을 수 가 없 는 친구다 . 요즈음도 가끔 전화를 하고 지내지만 내 기억에 남는 친구다 . 좋은 친구 한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만 리 길 나 설 때 처자를 맏 기 며 맘 놓고 갈만 한 사람 그대는 가 졌는가 ?온 세상이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사람이야 하는 그 런 사람 을 그대 는 가 졌 는 가 ? 하는 함 석 헌 선생 의 시 를 암기해 보았다. 52년 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찾아온 친구 너무 고맙다 . 문 일이가 고등학교 때 규율 부 를 하고 나는 반장..

나의 창작품 2013.01.05

세월아 너만 가거라

세월아 이젠 너만 가거라 壬辰년도 가고 己巳 년이 내 앞에 또 왔으니 두 번째 만남이다 내 인생 돌아보니 허무했던 시간보다 정신없이 뛰었던 사업과 직장에서 경쟁자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그 시간만 내 삶이었다 나는 아직 청춘에 살고 있다 후회 없이 살아온 내 인생 76년 학창 시절엔 세상에 나가면 모든 게 내 것이려니 꿈꾸던 철없든 꿈 만만찮은 인생사 이것이 현실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허무하구나 마무리를 할 때가 온 것인가 세월 속에 늙은 내 몸 읽었던 수많은 책들 그리고 남은 것은 넋두리뿐 나에게 또 다른 도전이 눈앞에 나이를 운운하며 내 발목을 붙잡으려 하는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세월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고향 떠나 반세기 떠도는 나그네 인생길 아쉬움만 남은 나그네 세월 너만 가거라!..

나의 창작품 2013.01.04

다듬잇 돌

1947년 일제가 패망 하든 후 나는 역사적인 하의 초등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 일본이 패망하기 전 에는 한문 서당에서 3년간 명심 보감 배웠기 때문에 아버지가 2학년에 편입시켰다. 3학년 어느 더운 여름날 나는 학교 갔다 와서 마루에서 빨래 다듬잇 돌을 베개로 하고도 낮잠을 자고 일어 나서 웃으면 입이 비틀어졌다. 아버지가 깜짝놀라 이대로 두면 안 된다고 나를 외가집 마을로 손 잡고 가면서 가다가 큰 마을 대리가 있었는데 가게에서 사탕 과자를 사 주시든 기억이 새롭다. 나는 과자를 먹으면서 시골길 십리길을 논둑길 받둑길 산길 을 걸어 외갓집에 도착하여 한의사를 불러와 침을 맞고 대추나무 갈고리로 입에 걸고 며칠을 치료 하여 정상으로 돌아왔다. 만약 그때 여러날 을 그냔 방치 하 나는 일생을 장애자 로..

나의 창작품 2013.01.03

아버님 생각

내 나이도 이제 76세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다. 아버님의 생각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아버님은 12살 어린 나이에 어머님을 잃으신 슬픈 소년으로 사신 것이 자구만 생각나는 것이다. 천진난만한 그 소년 시절 농경사회에서 한창 한학을 배우실 때 어머님이 갑자기 산고 끝에 별세하셨다고 들었다. 그 시절에 한의사가 있기는 했지만 시대가 100년 전 할아버지가 재산은 많아 있는 노력을 다하였으나 끝내 할머님은 세상을 떠나고 아버님은 12살 때 효자로 알려진 아버님의 슬픔을 생각해보면 눈물이 앞을 가려 글도 쓸 수 없게 한다. 아버지가 할머니 묘에 가서 흙을 손으로 파면서 엄마를 부르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까지 눈으로 볼 수 없어 말렸다고 나는 듣고 자랐다. 우리 아버님은 서당에서 도 많이 공부하시고 그 시절 ..

나의 창작품 201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