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품 4764

입학식 날

치영 이의 입학식날 당진 합덕 제철 고등학교 입학식 날 이다 . 2011년 3월 3일 수요일 날씨도 청명한 축복의 날 사랑하는 치영 이는 이제 부모 품을 떠나서 타향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제가 장학금을 탄다고 결심을 하는 것이 여간 대견한 것이 아니다. 나는 치영이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졸업 할 때까지 10개 이상의 자격증을 가질 수 있다니 장래가 촉망된다. 내가 컴퓨터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치영 이 때문이다 치영이의 장래를 기대한다. 치영아 ! 부디 건강하게 3년을 잘해내기 바란다 .내 꿈이 이루어지기를 할아버지는 기대한다 죽어도 거기서 죽겠다는 각오를 할아버지는 믿는다. 그래 너는 할 수 있어 그것이 너의 축복의 길이다. 신이여 ! 사랑 하는 치영 이의 앞길에 가호가 있기를 기원 ..

나의 창작품 2013.10.18

자전거 도둑

나는 요즈음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 자전거로 5분 거리 지만 자전거 운동을 좋아해서다 . 30여년전 나는 이태리제 경주용을 타고 다니면서 동우회에서 근 거리는 20여명이 운동을 하였다 .재미로 동우회에서 시합을 다니기도 하였다 . .한번은 서울 효창공원에서 경주를 하였는데 비가 억수로 오는 날 시합을 하였다 .시합은 40대 50대 60대로 나누어 했는데 등수에는 만려지만 그래도 잘 했다 . 또 한 번은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안양 까지 도로 경주를 하였다 . 물론 그때도 참가에 의미를 두고 등외를 하였다 . 또 한 번은 제물포역에서 안양 까지 도로 경주를 나갔다 . 그 자전거는 그 당시 비싼 경주용 이였는데 집에 오면 거실에 달아메놓고 보관을 잘했는데 하루는 거실앞에다 .그냥 놔 둔 것이 아침에..

나의 창작품 2013.10.18

글 쓰기

돌이켜 보면 내 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기억 55년 전이다. 문예부 원 몇 사람이 목포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게 되어 내 시 가 추천이 되어 방송한 것이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호를 가지고 나 혼자서 쓰고 있었으니 그 호가 후광이었다. 어느 땐가 알고 보니 김 대중 대통령 호가 後廣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나는 小浦로 바꿔 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다. 소포리가 먼저 동네 이름이고 행정개편으로 그다음이 후광 리로 지금도 후광리 이 다.

나의 창작품 2013.10.18

가문의 영광

둘째 사위가 10월 말일날 대통령 상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 박사만 있는 대덕 연구단지에 근무한 둘째 사위 000 박수를 보낸다. 자신의 영광이고 가문에 영광이다. 그 박사들 틈에서 그냥 일 하기도 힘든데 대통령 상 너무 장 하다. 피 나는 노력 의 결정체 그 심한 경쟁력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고 싶다. 형은 면장 에서 군수로 승진 모두가 가문의 영광이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준다. 서기관 으로 청와대에서 수상 우리나라 박사들이 많다는 연구 단지에서 장 하다. 정말 장하다.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나의 창작품 2013.10.17

여 선생님과 풍금

우리 가 어려서 초등학교 5학년 인지 6학년 인지 잘 기억이 희미한 65년 전쯤 일이다. 우리 학교에 여 선생님이 한 분이 있었는데 21살이었고 우리 학생들은 그 시절 25세 청년 나이가 차이가 많든 그 시절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한 반 친구들 이 건만 아들놈아 아들놈아 부르든 시절 결혼 한 학생도 다섯 명 정도 있었다. 여 선생님 이 키 큰 학생들을 부르면서 풍금을 옮겨 달라고 반 말로 하든 그 시절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그 옛날이었다.

나의 창작품 2013.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