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품

나의 유학 생활

소포(우종성) 2013. 5. 1. 19:36

 

나의 유학 생활 6년

 

 

다도해 푸른 물결 감접어 들어 옥으로 세겨 놓은 높은 유달산

망메산 은 연 꽃이 물위에 떠 있는 듯한 유서 깊 은 하의도

 

고 김 대중 대통령의 호 후광 마을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천자문 일곱 살 때 사자

 

소학 여덟 살 때 명심보감을 서당에서 배우고

 8 15 광복 을 맞는다.

 

 

6 . 25후 열 세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로 유학 하였다.

.

목포제일 중학교 중 학교가 5년제에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제로 바뀐 후 였다 .

 

학교 건물은 괴뢰군이 물러 가면서 불 태우고 가 건물이 불타고

골조만 남아 있어 나무 밑에서 수업을 하였다 .

 

.그러나 학교 규모가 엄청나게 커

운동장이 목포 시내 학교 축구시합을 할 정도

 

 공설 운동장이 없어 상업 학교에서 하였다 .

우리는 목포 상업학교에서 분리된 목포 제일 중학교 다

.

수업도 주산 부기를 배웠다 .

외국 원조 목제를 목포 선창에서 전교생이 날라서

 

학교를 세웠고 인사도 건설 이였다.

 신탁 통치 반대 집회는 목포역전 에서 하였다

 

.고등학생들은 목총으로 훈련을 받는 시절 이였다.

그래도 학교는 건설이

 

빨라 원상 복구되어 교내에

학교 은행도 운영하였다 .

 

인상 깊은 선생님은 부기 선생님 조 용기 선생 님 이시다

 말 하시는 발음이 정확하고

 

본인  이 쓴 책 으로 공부를 가르키며

몇 페이지 몇째 줄을 기억하여 말 하는

 

선생님 앞에는 수업 시간이 엄숙하다.

 

 

삼개성상을 그렇게 졸업하고 나는 1년간 휴학하고

 고등학교는 목포 공고를 지망하였다

 

.화공과 전기과를 지망 하고 전기과를 택했다 .

막상 전기과를 지망하고 보니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학과만 공부하여 나는 그만 포기 하고

다른 인문 계 공부를 하고

 

 대학을 공주 사대 국문과를 염두 에 두고 공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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