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사의 섬 하의도에서
아버지 우 연번 어머니 고 육례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하의 면에 학교가 없을 때
안좌 기자에서 학교를 다니셨고
대리 초암 선생님 제자로 한학도
많이 배우셨다.
그래서 그런지 어려서 보면
마을 60여 호의 글씨 나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버지가
많이 하신것을 보고 자랐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신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아버지가 한번은 담배 피운 것을 할아버지가 보시고
야단 한번 맞고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말로만 들었다.
술도 한잔 이상 하신 적이 없으신 아버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였다.
그 시절 농경사회 에서 그렇게 모범을 보이신 아버지가 너무 존경스럽다.
100년 전 정확히 104살 이시다.
근면 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 그 많은 농사일도 다 하시고
방앗간 (이동식 ) 하시고 염전은 큰 할아버지
염전도 하셨으며 큰 할아버지의 농사일까지 다 맡아하신 아버지
너무 고생이 많으신 아버지 존경스럽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 서너 살 때쯤으로 알고
나를 누님이 업고 다니셨을 때라고 들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섬 에다 놓아둔 여섯 마리의 소 중에
우리 소가 두마리 또 다른 두 집 소가 각 두 마리로
모두 여섯 마리의 소를 놓아 먹이는 섬을 일본 사람이 그 섬을 사면서
그 안에 있는 여섯 마리 소 까지 자기가
산 것이라고 하여 그 시절 재판을 하게 되었다.
소 가있는 셋집 중 한집은 우리 할아버지께 위임하고 재판에서 승소하면
한 마리를 주기로 하여 그 재판에서 승소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사람에게 재판에서 승소한 일 은
목포에서 없었다고 한다.
승소 한날 재판소에는 박수가 그때도 대단하였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하의도에 도착하여 대리 집 앞을 오시니까 그 시절에도
소문을 듣고 모두 박수를 받았고
그때부터 유명세를 타신 것이라고 나는 듣고 자랐다.
동산과 부동산을 분리하신 것이다.
그래서 한집 소 한 마리도 우리가 약속대로 세 마리 소를 찾은 것이다.
나는 우 탁 할아버지 23세 손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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