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품

하의도 입도조 1702년 후광리 에 영암 에서

소포(우종성) 2013. 10. 9. 17:21

 

하의도 입도조 (荷衣島 入島祖) 

 

1702년 후광 리 에 영암에서 오신

禹(우) 明(명)泰(태) 할아버지 가 3009 년 전 입도 하신 것으로

기록 에 있다.

내가 어려서 어르신 들을 따라 대리 덕봉산 으로 성묘 때 따라 다니든

그 묘가 하의 후광리 에 영암 에서 오신 것을 알았다.

후광리 의 역사 를 알 수 있다.

큰집 앞 고목 팽나무 금일 숙 네. 앞 고목 팽나무

팽나무 400년 은 되었으리라.

짐작 할 수 있다.

하의도 후광의 역사

9세의 할아버지 다 .시조 할아버지 로 부터 23세 나 로 부터

9세 할아버지 가 후광 리 에

뿌리를 내리신 것 으로 되어있다.

우리의 입도 조는 옥도리 에 있는 선산 에 모신

할아버지다.

옥도 쌍봉묘 得文

어려서 아버지 따라 성묘 를 다니든 기억

그 때는 집안 어르신들 따라 많은 집안 사람 들이

성묘하는 일이 년 중 행사 였다. 큰 풍선을 타고 다니든 시절

 

 

묘 를 벌초 까지 해주고 관리 를 해주면 그에 보답 으로

 땅을 빌려주든 농경 사회 의 미풍양속

 

그 시절 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사람이 없어

 몇 사람이 고작 성묘 를 한다니

시대의 흐름이 이렇게 변하였다.

 

27세 옥도 리에 모셔져 있고 산중(山中) 할아버지 는 27세 이 시며

가섬 에 모셔진 할아버지 28세 이시며 영민 할아버지 시다.

어려서 아버지와 많은 일가 가 성묘 를 하러 다니든 그 농경 사회

지금은 사람이 없어 성묘 도 하지 못 한다고 하니 가슴 아프다.

 

한번 가 보고 싶다 이제 나도 76세 가 되어버린 속절 없는 세월

을 한탄 스럽다. 족보 (세보)를 찾아 내 뿌리만 정리 를 하여 보았다.

 

2013년 10월 29일 아침 32세 손 鍾城 쓰다. .

 

우리 집안도 자기 뿌리를 찾아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충연 동생 하고

덕후 조카 단 두리 성묘 를 한다니 안 타 까 운 마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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