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품

기행문 한려수도를 찾아서

소포(우종성) 2013. 10. 10. 17:07

 

기행문

한려수도를 찾아서

 

 

1990년 10월 4일 추석 다음날 새벽에 집을 나섰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하는 친목회

. 42명의 부부 끼리 2박3일 간의  처음인 긴 여행은

앞으로의 인생의 설계를 재정리 하기위한

결정을 하고 관광차 에 몸을 실었다.

전주를 거쳐 남원의 명소인 광한루 에 내려 점심 식사 를 하였다.

 

 

이 도령과 춘향이가 만났던 광한루와

이제까지 TV로만 보았던  그네 터,

오작교 를 둘러보았다. 유명한 곳 마다 사진에 담았다.

다시 태백산 을 향하여 움직였다.

논에는 누런 벼를 베고 있는 발전된 농촌을 보고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지리산을 향하여 가는 길목에 고등학교 시절에

수학여행 갔을 때를 생각하니 감회가 깊다.

 

 

남한에서 제주도의 1900m에 달하는 두 번째 높은 산

지리산의 장관은 보기에 너무나도 좋았고 웅장하였다.

 차는 정상 가까이 올라가는데 길은 점점 험해지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밑을 보아도 하늘을 보아도 무서울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다.

낮에는 아군이 밤에는 적군이 있었던

크나큰 전쟁터였기에 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것이다.

 

섬진강이 흐르는 물줄기는 지금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노고단에서 잠시 내려 사진을 찍었다. 구례를 지나 순천 송강 사에 이르렀다 .

국내 3대 사찰인 송광사는 역사적 사적이다.

임진왜란 때 400명의 밥을 감추어 두었다는 사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통이다.

 

늦은 저녁에 다시 여수를 향해 출발하였다

.

여수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며칠간 머물던 곳이다.

그래서 더욱 감회가 깊은 여수다.

 밤늦게 되어서야 오동도 입구에 내려서 여장을 풀었다.

오동도는 32년 전에 내가 왔었던 곳이다.

특히 여수는 깨끗한 항구이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이곳 여수에서 첫째 밤을 지내게 되었다..

 

아침 7시에 기상 하여 오동도 로 출발 하였는데

32년 전에 내가 왔던 오동도보다 많이 개발되어 있었다.

 

 그러나 역시 바닷물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여수

 동백나무는 더 많이 자랐다

너무 좋은 경치에 감탄사가 나온다.

 

아침 식사 후에 남해 대교에 갔다.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큰 섬이며

옛날 유명한 유배지이고 포로 수용소로 이용된 큰 섬이었지만

지금은 육지가 되었는데,

대교는 정말 장관 이다.

한려수도 해상공원은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검은바다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서 굴속을 구경할 수 있었다.

기묘한 절경은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2시간 정도 구경을 하는 동안은 

마치 천국을 구경한 느낌이었다.

 몇 억년 동안 깎이고 바람에 깎인 바위의 절경은

제아무리 유명한 화가라도 이런 풍경을 그릴수가 있을까

 

사진을 찰영 하였다.

다음으로 개인이 10년 동안 개발했다는 섬에 도착했다.

 

여기도 천국이었다.

꾸며놓았기 때문에 내년부터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200년 묵은 후박나무에서 흐르는 후박나무의 약수는 일품이다.

 

작은 섬이지만 이곳이 지상의 천국 같은 느낌이다.

잊을 수가 없는 곳이다.

 

대우조선소의 어마 어마 한 규모를 보면서 부마 고속도로를 따라 부곡하와이로 출발하였다.

이제까지 경상남북도에 발을 디뎌 보지 못했는데,

 이제야 경상남북도를 조금이나마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다.

.

모두들 즐거운 여행길에 차 안에서는 노래와 춤으로 떠들썩 하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부곡하와이에 두 번째의 여장을 풀었다.

 모처럼 아내 와의 즐거운 여행 이었다. 도중에 점심은 통영에서 해결하였다.

 

나는 아내와 같이 부곡의 밤이 즐겁기만 하였다. 다음날 아침 부곡 하와이 내부에 입장하였다.

이곳은 하와이처럼 꾸며놓아 많은 사람이 관광을 왔었다. 그래서 온천수에 몸을 맏겼다.

 

구미 금오산에 내렸다. 도립공원은 잘 개발이 되어 발길 눈길이 머물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많은 신경을 써서 개발된 흔적이 역력하였다.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이 되어 다시 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차 안에서 노래와 춤을 마음껏 즐겼다.

 마침내 여행을 다 마치고 인천으로 다시 올라왔다.

 

 

 

광한루에서

金(금)樽(준)美(미)酒(주) 天(천)人(인)血(혈)

玉(옥)盤(반)歌(가)肴(효) 萬(만)姓(성)膏(고)

燭(촉)淚(루)落(락) 時(시)民(민)淚(루)落(락)

歌(가)聲(성) 高(고)處(처) 怨(원)聲(성)高(고)

金樽美酒千人血

玉盤歌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해설

금동이의 향기로운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반위의 기름진 고기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떨어질때

백성의 눈물떨아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구나 . 

 

사또 잔치에 이도령이 암행어사 출도직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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