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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향 하의도로 가는 여객선 안에서 비 내리는 다도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 이주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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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다도해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오전 9시 목포에서 하의도로 가는 여객선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태반이 외지인이다. 그리고 또 한사람, 하의도가 고향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14년 만의 귀향이다. 귀향길엔 박준영 전남지사, 박지원 의원(전남 목포), 이윤석 의원(전남 무안신안), 김옥두 전 의원, 차남 김홍업 전 의원 등이 함께했다.
한 시간 남짓 바다를 달린 여객선은 그와 지지자들을 고향 선착장에 내려줬다. 이미 선착장엔 100여 명의 주민들이 나와 그의 귀향을 환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뒤 바로 하의면 대리에 있는 선산에 성묘를 갔다.
은곡리에 산다는 김씨(70) 할아버지는 "저 분이 여기 한번 오려고 얼마나 힘들었겠냐"며 "대통령 하고 계실 때 오셨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오시니 기분이 좋다"고 환영했다.
대리에 사는 전채신(73) 할머니는 김 전 대통령의 사촌 형수다. 전 할머니는 "시숙님 오신다기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왔다"며 먼발치서 김 전 대통령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전 할머니는 "건강한 모습 뵈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하며 목이 메어 말끝을 흐렸다.
선영에 귀향인사를 마친 김 전 대통령은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그는 "이 운동은 지주에게 항거하는 소작쟁의와는 다르다"며 "농민 자신들이 개간한 땅의 소유권을 강탈당한 데 대한 항의였고 토지 탈환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고, 6년 반을 감옥살이를 했고, 20여 년간을 연금과 감시 속에서 살았고, 3년 반의 망명생활도 했지만 하의3도 농민의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끝까지 투쟁했다"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의3도 농민의 위대한 토지 탈환운동의 정신이 내 몸 명맥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의3도 농민의 위대한 토지 탈환운동 정신이 내 몸에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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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의도 주민 100여 명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착장까지 나와 김 전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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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의도 주민들이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환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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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환영해주는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김 전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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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은 하의도 명소 중 한 곳인 큰바위 얼굴과 자신이 다녔던 서당 터를 잠시 둘러보았다. 그는 자신이 4학년까지 다녔던 하의초등학교 교정에 기념식수를 한 뒤 새까만 후배인 하의초등학교 학생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그는 하의초등학교에서 즉석연설을 하며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는 말로 14년 만의 귀향한 소감을 나타냈다. 특히 그는 이 연설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행동하는 양심'을 다시 주창해 이목을 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다시 하의3도 농민운동 정신을 거론하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고,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신시절과 5공시절에 군사독재에 숨죽여 말도 못했던 이들이 그들에 맞서 싸웠던 이들과 민주주의를 함께 나누고 있다"고 꼬집으며 "다시 민주주의에 위기가 왔다, 방관하지 말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는 특히 "나에게 생명이 있는 한 불굴의 의지로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며 자신이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해서 적극적 역할을 계속 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어제(23일) 목포에서 한 환영만찬사에서도 "나에게 생명이 있는 한 나라가 잘 되기를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김 전 대통령은 고향나들이를 하는 동안 발언을 할 때마다 "아직 건강은 괜찮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그는 여든 중반이라는 나이와 신장 투석을 받고 있는 환자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빡빡한 고향 나들이 일정을 쉬지 않고 소화해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여든 중반을 넘어선 자신의 생물학적 나이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에 비례하는 '절박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불굴의 의지로 꾸준히 노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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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영에 참배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일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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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매진하고자 하는 문제도, 그가 이렇게 필생을 걸고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도 남북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박지원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여객선에서 내리기 직전에 대통령님께 고향에 오시니 흥분 되시냐고 여쭸더니 환하게 크게 웃으시더라. 그러시던 분이 선영에 참배하고 나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것은 마치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순간 대통령님께서 어떤 마음의 정리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보스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사가 6자회담 당사국들을 순회 면담한다는 보도를 접하셨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결정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는 뉴스였다. 대통령께서는 현재의 북미관계와 북미대화를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고, 또 근래에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대북정책 변화의 조짐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희망을 갖고 계신다."
박 의원의 말대로라면, 김 전 대통령은 현재 북한과 미국의 관계진전이 1994년 북미 제네바협정 체결 당시처럼 자칫 한국이 또다시 소외·고립을 자초하는 정세가 형성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아주 작은 변화로 비춰질 수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대화 수용을 크게 인정하고, "이 방침을 상당히 진전시키라"고 조언하는 것도 한국이 고립을 자초하는 최악의 수만은 두지 않기를 바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한국만 고립되지 않으려면 이명박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하고, 이를 북돋기 위해 이명박 정부의 비둘기파에게 응원을 보내주고, 결국엔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남북대화만이 남북 화해협력의 열쇠라는 것을 깨달아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전략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오는 5월 예정인 중국 방문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도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서 한국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가는 어떤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그가 자신의 탯자리인 고향 하의도에서, 또 자신의 정치생명의 모태 같은 목포에서 "생명이 있는 한 불굴의 의지를 갖고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하는 대목은 심상치 않다. 그 첫 노력의 결과가 오는 5월 중국 방문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은 후광리에 있는 자신의 생가를 방문하는 것을 끝으로 1박 2일의 고향나들이를 마쳤다. 14년 만에 고향을 방문한 그는 고향 사람들에게 "불굴의 의지를 갖고 함께 노력하자"고 주문했다. 그의 의지와 노력이 한반도 문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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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초등학교 후배들인 하의초등학교 학생들이 "대통령 할아버지 사랑해요"하자 밝게 웃고 있는 김 전 대통령 내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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