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사시사>는
고산 윤선도가 전남 완도에 있는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 살면서 우리말로 지은 40수의 노래다.
내용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바다를 주제로 이곳에 인생을 묻고 사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것인데
각 노래의 끝에는 어부가 배를 띄워 바다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 노래 속의 어부는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어부가 아니다.
자연에 묻혀 세상의 시름을 모두 잊고 한적하고 청일한 어부의 생활을 본받으며 사는 어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렬한 삶의 모습 보다는 바다를 즐기는 관찰자,
자연과의 완전한 합일을 추구하는 관조자적인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
윤선도는 이 노래를 지을 때
주인과 객이 뱃전을 두드리며 장단에 맞추어 함께 부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부사시사>는 각 절마다 반복되는 후렴구가 붙어 있어
마치 우리의 민요처럼 주고 받는 식으로 되어있다.
해석
앞 포구에 안개가 걷히고 뒷산에 해가 비친다.
썰물은 거의 빠지고 밀물이 밀려 온다.
강 마을의 온갖 꽃들이 먼 빛으로 바라보니 더욱 좋구나.
감상
썰물과 더불어 한밤이 지나고 밀물과 함께 새 날이 밝아 오는 봄날에,
만경 창파에 배를 띄워 어부의 하루의 생활이 시작됨을 서곡으로, 이 어부사시사가 시작이 된다.
때는 바야흐로 봄, 온갖 꽃이 만발한 경치도 좋거니와 안개 걷힌 강마을의 원경은 더욱 좋다.
어부의 낙이 고기잡이에만 있겠느냐.
원수 화경(遠峀花景 : 멀리 보이는 산과 꽃의 경치)이 어부의 생활에 더욱 흥취를 자아내게 한다.
초장과 중장은 각각 대구법으로 이루어졌으며,
'압개'와 '딧뫼' '밤물'과 '낟물'은 서로 대조적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해석
날이 따뜻해졌도다. 물 위로 고기 뛰논다.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하는구나.
낚시대는 손에 쥐어져 있다. 막걸리 병은 실었느냐?
감상
봄이 되어서 날씨가 따뜻해졌다.
지상의 세계인 물 속에서는 움츠렸던 물고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본격적인 산란철을 맞아
수초 많은 냇가지대로 몰려든다. 하늘의 세계인 공중에서는 갈매기가 떼지어 짝짓기에 열중이다.
비로소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고 식물뿐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생산을 위한 활기가 넘친다.
그 속에서 한가하게 낚시를 하는 강호한정(江湖閑情)의 정서가 보인다.
낚시는 물욕(物慾)의 상징인 그물과 달라서 자연의 생태계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인간의 범우주적 물애주의(생존을 위하여 최소한으로 자연에 간섭하는 경우로
그것은 자연의 생존법칙에 준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막걸리라는 서민의 술을 찾는 것을 통하여서도 욕심이 없는 삶을 추구하고
거기에서 만족을 느끼는 소박한 삶이 정겹다.
해석
동풍이 문득 부니. 물결이 곱게 일어난다.
동호를 돌아보며 서호로 가자꾸나,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타난다
감상
순풍에 돛을 달고
완도 보길도 근처의 바다를 미끄러지듯이 경쾌하게 배가 나아가는 장면은 한 폭 의 산수화다
강호(江湖)의 한정(閑情)을 즐기는 풍류객으로서 유유 자적(悠悠自適)하는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순풍에 돛을 달고 바람 부는 대로 배를 내 맡겨 둔다.
바람이 자면 노를 저어 나타나는 주위의 경치를 보면서 자연을 즐기는 것이다.
동풍과 여음(餘音)이 잘 호응되고, 중·종장은 대구법을 썼다.
종장은 서서히 경쾌하게 그려 생동감이 넘치게 하였다.
해석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드나무 숲인가.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하는구나.
맑고 깊은 연못에 온갖 고기 뛰논다.
감상
어부사시사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노래는, 순수 국어 사용으로 언어의 조탁이 참신하며,
표현면에서도 다양한 기교를 나타내어 수작(秀作)으로 일컬어진다.
버들숲은 흐드러지게 춘색을 자랑하는데, 뻐꾸기도 춘흥(春興)에 겨워 노래한다는 초장은
대구로 깊어 가는 봄 정경을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이 부분은 '우난 거시 벅구기가'의 청각적 이면서 동적(動的) 표현에,
프른 거시 버들숩가'의 시각적이면서 정적(靜的) 표현이 조화를 이루어 시적 감흥을 더해 주고 있다.
중장에서 강호연파(江湖煙波)의 강촌의 원경과 종장에서의 맑은 강의 뛰노는 고기도 표현의 미를 이루고 있다.
강촌의 춘경을 '벅구기, 버들숩, '와 같은 평범한 소재로 한 폭의 동양화처럼 그려 놓았다.
이와 같이 윤선도는 평이한 소재들을 가지고 고유어의 묘미를 살려 시심(詩心)을 승화시켰던 것이다.
해석
고운 햇빛이 내리 쬐니, 물결이 기름처럼 반짝인다.
그물을 넣어 볼 것인가? 낚시를 드리워 볼 것인가?
탁영가의 흥취가 일어나니 고기 잡을 생각도 잊겠도다.
감상
지은이의 인생관이 투영된 시이다.
환해(宦海) 풍파(風波)를 거친 윤선도가 지겨운 벼슬사회의 당쟁을 피해,
또는 귀양을 와서 느끼는 정서는 참담함이고 한 때의 영광이 먼지와 같고
더러운 속세의 갈등과 모략, 음모 등이 지겨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물을 물에 담궈 고기를 많이 잡는 것도,
낚시를 통해 하나씩 잡는 것조차도 욕심에 해당한 것이 아니냐는 깨달음을 얻는 듯하다.
문득 집착했던 낚시도 물욕으로 느껴져 갓끈을 씻지 않고 세상의 먼지를 털어 버리겠다는 다짐이 보인다.
* 탁영가【濯纓歌】: 탁영【濯纓】갓끈을 빤다는 뜻으로,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강담(江潭)에서 노닐 적에 어부(漁父)를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어부가 세상과 갈등을 빚지 말고 어울려 살도록 하라고 충고를 했는데도 굴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어부가 빙긋이 웃고는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면 될걸.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초사(楚辭) 어부사(漁父辭)에 나온다.
해석
석양 빛이 비치니 그만하고 돌아가자꾸나.
언덕 위의 버들과 물가의 꽃들은 굽이굽이 새롭구나.
삼공(벼슬)을 부러워할소냐? 세상 만사 생각해 무엇하리
감상
역시 윤선도의 인생관이 나타난 시이다 그 당시 어지러운 세태도 유추할 수 있다.
벼슬만능과 물질만능과 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던 때에 권력의 힘에 밀려
귀양을 와 있는 윤선도가 벼슬사회에 염증을 느낄 것은 뻔한 이치이다.
부귀와 공명을 포기하고 자연과 벗하면서 지내는 날들이 점점 더 익숙해지고
이젠 더 이상 벼슬사회에 대한 미련이 깨끗이 사라진다.
지금은 오히려 명예욕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좋은 경치를 완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나의 일과이지만
벼슬을 동경하는 일이 차라리 세세하고 작은 하찮은 일로 비추어 지기 시작한 것이다.
해석
고운 풀을 밟아 보며. 난초와 지초도 뜯어 보자.
한 조각 거룻배에다 실은 것이 무엇인고
갈 때는 나 뿐이었는데, 올 때는 달이 함께 한다.
감상
물외 한정(物外閑情)을 읊은 노래로 탈속의 경지를 나타내었다.
본디 '漁父'란 '漁夫(고기잡이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와는 달리,
세월을 낚고, 자연을 낚으며 인생을 낚는 풍류객이므로
번거로운 세속에 쫓김이 없이 유유 자적(悠悠自適)하게 자연을 벗할 뿐이다.
춘정(春情)에 못 이겨 배를 세우고 꽃다운 풀도 밟아 보고, 난초와 지초를 뜯어 향기도 맡아 보며,
한 조각 거룻배에는 출범할 때 가득 실었던 안개가 걷히고,
돌아오는 길에는 청강(淸江)에 쏟아지듯 비치는 달빛을 한아름 싣고서 돌아온다.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나인 주객 일체, 물심 일여(物心一如)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어부사시사의 전형적인 표현 수법인 대구법(초장과 종장)과,
환경 변화와 시간의 추이(推移)에 따른 시상 전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해석
술에 취해 누웠다가 여울 아래 내려간다.
떨어진 꽃잎이 떠내려 오니 무룽도원이 가까이 있는 듯,
인간 세상의 더러움이 얼마나 내 눈을 가렸던고.
감상
초중장에서 경치가 좋고 살기 좋은 이상향 같은 자연에서의 삶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종장의 인간세상을 비판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부귀와 공명심에 빠져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가를 알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즉 욕심에 빠져 무릉도원이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다는 자탄(自歎)과
이제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만족감이 보인다.
해석
낚시줄을 걷어놓고 봉창을 통해 달을 보자.
벌써 밤이 깊었는가, 소쩍새 소리 맑게 들리는구나.
남은 흥취가 끝이 없으니(돌아) 갈 길도 잊었구나.
감상
집으로 돌아와서 포구에 닻을 내리면서도 밤 경치를 더 즐기고 싶은 아쉬움이 밀려든다.
밤경치도 수려하여 흥취를 돋구니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 밤늦게 엄마의 꾸중을 듣고도 더 놀고 싶던 기억이 새롭다.
해석
내일이란 날이 또 없으랴. 봄밤이 바로 샐 것이다.
낚싯대로 지팡이를 삼고 우리 집 사립문을 찾아가자.
어부의 한평생은 이럭저럭 지내노라.
감상
시간이 쫓기는 현대인은 오랜만에 만나게 된 봄밤의 경치가 아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작자 자신도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여유로움을 찾는다.
왜냐하면 치열한 경쟁을 하는 벼슬사회를 떠나 강호한정(江湖閑情)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일도 시간이 지천으로 남아있다.
오늘은 아쉽더라도 놀고 싶은 욕망을 접고 내일 일찍 다시 놀이를 나가자는 내용으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모습과 여유 있는 태도가 돋보인다.
어부의 생애가 이럭저럭 지낸다고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가장 여유 있음을 보여주고
'이렇게 살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속에 은근한 자부심과 자랑이 숨어 있는 것이다.
마치 현대인들에게 '부럽지'라고 놀리는 것 같다.
去歲中秋在南海
孤山선생께서는 인조임금때 환궁한 인조임금을 호종(扈從)하지 않았다는 반당의 무고와 어처구니없는 모함으로 1638년 6월에 영덕에 도착하여 약 8~9개월간 유배생활을 하다 이듬해 2월에 고향인 海南으로 돌아가셨다. 고산께서는 3번이나 유배되었는데 영덕이 2번째이다. 선생께서는 이곳에서 적거(謫居)의 시름을 달래면서 주옥같을 20여편의 시를 남겼다.
이곳 盈德에서는 先生의 흔적을 되살리고 선생께서 남긴 文學의 香氣를 전하고자 푸른 東海가 내려다보이는 영덕풍력단지내에 지난 06년3월11일에 시2수가 담긴 고산선생시비를 세웠다. 이 시비에는 새로운 거처에서 중추를 맞는다(新居對中秋月)는 2수의 시로 되어 있는데 재경 향토서예가 艸堂 이무호 선생게서 초서체로 휘호한 보기 드문 역작이다. 시비의 무게는 약15톤으로 시비로서는 국내 최대의 규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충남 보령산 오석(烏石)으로 제작 되었다.
초당선생께서는 조실부모하고 필묵이 없어 칠보산에 소를 먹이러 다니면서 싸리 꼬챙이로 땅바닥에 쓰던 데서 비롯된 태극서법은 법이 녹아내려 음양조화를 이룬 초당 특유의 서체로서, 중국의 갑골문과 청동기 시대 종정문, 육조해서, 한예, 진, 당, 해행초서 등 400여 종류의 서체를 임서하고 손과정과 회소 광초의 일인자인 장욱의 필의에 바탕을 두었다.
前 一首는 동해의 달빛이 교교하니 더욱 망향의 쓸쓸함을 달래는 당시 선생의 심정을 그리려 했고, 이어지는 二首의 운소풍정의 대목에서는 그의 억울한 처지를 생각할 때 격분이 치밀어 올라 힘차게 내려치는 브라질 이과수 폭포의 장엄한 힘을 연상케 하는 듯하며 청유라고 빌어보는 대목에서는 선생의 맑은 기품이 엿 보인다.
종구에서는 고산선생의 애달픈 심정을 표현 한 것 같으며, 시비에 달모양과 조화된 초서체를 택한 것은 해맞이공원과 야간달빛산행을 위해 풍력발전단지를 찾는 분들의 낭만을 배가시킬 수 있도록 하고 시의 내용과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서체인 것으로 생각되며 시비석도 반달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後面 글씨는 목간서체로 썼고 번역문은 한글 민체에 중국의 찬보자비 필의를 담아서 만든 창작체이며 시비건립기문은 판본체와 한문 광개토대왕비 서체를 섞어 썼다.
去歲中秋在南海 지난해 중추에는 남해에 있으며
茅簷待月水雲昏 수운이 저물녘 모첨에서 달을 맞았네.
那知此夜東溟上 어찌 알았으라, 이 밤 동해 바닷가에서
坐對淸光憶故園 맑은 달빛 마주한 채 옛 동산 그리워할 줄
雲消風定絶纖埃 구름 잦아들고 바람 가라앉아 먼지 끊어지니
正是幽人玩月來 바로 숨어사는 이 달구경하러 오는 때로다
敢爲淸遊煩黙禱 청유를 위해 힘들이며 말없이 비는데
龍鐘應被海仙哀 늙고 병든 모습 해선께 불쌍히 여겨지리.
錄 孤山先生詩二首
- 新居對中秋月 -
孤山尹善道先生詩碑建立記
우리나라 國文學史에 우뚝 솟은 尹善道 先生은 字가 約而이고 號는 孤山이며 本貫이 海南이니 宣祖 20年 1586年에 出生하여 顯宗 12年 1671年에 85叟의 生을 마감하였다.
先生은 別試文科에 及第하여 孝宗과 麟坪大君의 스승이 된 후 여러 번 出仕하였으며 丙子胡亂 때 南漢山城에 계신 임금을 扈從하고자 江華島까지 갔으나 還宮한 仁祖임금을 問安하지 않았다는 謀陷으로 1638年 3月 15日 流配의 命을 받아 六月에 盈德에 到着하니 이 고장의 申明達 申履謙 申履常 申履慶과 興海의 金光一 趙君獻 崔炫 金光宇 任孝伯 그리고 流配 온 李海昌 등과 어울려서 謫居의 시름을 달랬으며 仁祖 17年 2月 海南으로 돌아갔다
先生은 五友歌 漁父四時詞 등 수많은 詩詞를 世傳하였고 赤壁峰 臨鏡臺 高不峯 右谷里 등 盈德의 地名이 담긴 珠玉같은 詩 二十餘首를 남겨 우리 고장에 그 文學的 香氣를 더 하였다 비록 景致와 風俗은 宛然히 달라졌지만 文學을 사랑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에 孤山尹善道先生詩碑建立委員會는 文鄕 盈德에 先生의 痕迹을 되살리고 그가 남긴 文學의 香氣를 널리 傳하고자 푸른 東海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詩碑를 세운다.
2006年 3月11日
孤山尹善道詩碑建立委員會
委員長 盈德郡守 金炳睦
委 員 尹柄穆 申悳容 李台熙 金道顯 李垠植 李武鎬 趙鍾文 李完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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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남구 사식동 오우가 부산 기장군 일광면 안삼성대 시비(2005)
남양주시 시민체육공원 몽천요(1999) 부산시 성지공원 오우가
마로니공원의 오우가(1991년) 명동성당입구 표석(1998년)
춘천시 상사댐 오우가 영암 월출산 천왕사지구 오우가(1986년)
완도 보길도 어부사시사 종로구 연지동 연지공원내 오우가(2002년)
해남군 녹우당의 어부사시사 영암 월출산의 오우가(1986년)
●윤선도(尹善道, 1587-1671, 고산 孤山)
◦ 조선 중기의 뛰어난 문인, 여러 차례 유배와 만년의 은거(隱居) 생활을 통해 시조 창작
26세 때 진사, 30세때 성균관 유생으로 이이첨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경원유배(31세), 이어 기장 유배인조반정 때 유배 해제, 의금부도사
◦ 42세 때 별시문과 장원, 왕자(봉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됨
◦ 43세 때 공조좌랑, 형조정랑을 거쳐 한성 서윤 역임
◦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덕 유배, 곧 풀려 금쇄동에 은거
71세 때 동부승지, 당쟁으로 삼사의 탄핵. 효종 승하시 복식 문제로 3년설을 주장(남인), 서인의 세력에 밀려 삼수에 유배, 광양으로 이배됨
● 廣開土大王陵碑의 書體와 초당선생의 작품과 比較
廣開土大王陵碑文 詩碑의 建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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