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품

내가 살든 집

소포(우종성) 2021. 12. 4. 04:08

깊고 깊은 바다 1004의 섬 

하의도 후광 단양 우 씨 32세 손

할아버지 장손으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무인생 호랑이 띠 

아버지의 큰 아들 건강한 사내 이름이 금석이었다. 

 

집은 초가삼간 글자 그대로 삼간 방 하나 마루 부엌 

시골 초가집에서 여섯 살 때 천자문을 배우고

일곱 살 때 사자소학을 배우고 

여덟 살 때 명심보감을 배우고 815 해방 이 되었다. 

 

나는 하의 초등학교 2학년으로 편입 하였다. 

3학년 때 우리는 큰집 사랑채가 있는 집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집 으로 옮겨 살았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 살았다. 

 

23세 때 우리는 인천 용현동 무허가 집에 자리을 잡았다. 

우리는 내가 서울 고모네 세탁소에서

기술자와 같이 있으며 배운 기술로 전세로 살았다. 

선화동에서 나는 28세 때 결혼을 하고 

 

학익동 큰 기와집에서 조금 안정된 생활을 하였다. 

남동생 결혼 여동생 결혼으로 다시 생활이 어려워져

북성동으로 이사 노동자들 하숙집을 하였다. 

그것도 마땅치 않아

 

숭의동에서 작은집 기와집을  매이 하여 등기 이전을 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우리 두 사람

큰애 둘째 셋째 막내가 있고 막내 동생이 신학교에 다녔다. 

내가 40세 초 나는 화장품 대리점 총무 할 때 

 

우리 집 앞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우리는 스라브 집으로 할 때 

식구는 많고 하여 아버지가 숭의 교회에서 큰 천막을 빌려다가 

앞 공터에 치고 스라브 집을 건축 하였다. 

그나마 집 같은 집 처음 살아본 새집 스라브 2층 집에서 

 

부모님 막내 동생 우리 두 사람 큰애 둘째 셋째 가 아들 막내딸 

아홉 식구 가 살았다. 

집 사람은 어시장에서 장사를 하였다. 

나는 50 이후에 우리는 함께 장사를 하여 3년 돈을 벌어 

바닷 가 맨션아파트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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