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렙함

[스크랩] 어느 존경하는 선배님의 메일(묘비명)

소포(우종성) 2015. 11. 5. 10:54

 

잘 지내고 계신지요?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요즘 날씨 참 변덕스럽죠? 도통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꽃샘추위가 주중 내내 이어지다 주말에 날이 좀 푹하다 싶으면 황사가 몰려오니 말입니다. 운동도 좋지만 당분간 외출은 삼가야 할 듯합니다.

여러분들도 모쪼록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라며, 오늘은 지난번 보내드린 '유언'에 이은 이야기로 자신의 '묘비에 새길 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까 합니다.

 

독설가이며 시인인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시큰둥하게 “오전 중에는 시를 하나 짓는데 콤마를 하나 지워야 했지요. 그리고 오후에는 그 콤마를 다시 써 넣어야 했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인생살이 평생 하는 일 대단한 것 같지만 그저 콤마 하나 찍었다 지우는 일같이 느껴지게 하는 명문표현입니다. 죽음을 그냥 삶의 마침표 정도로만, 그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콤마하나 찍으면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들어갑니다. 장례식장안에서는 누군가에 대한 장례조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문행렬에 끼여 순서를 기다립니다.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호기심에 관 앞으로 다가갔다가 충격에 얼어붙습니다. 관 속에 누운 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무덤에 안장되고 모든 장례절차가 끝났습니다. 이제 “무덤 앞에 서 봅니다. 묘비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 묘비엔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가? 어떤 글이 묘비명이길 바라는가?”


최근 인생을 성찰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묘비명은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남겨두고 가는 마지막 흔적입니다. 결국 망자가 세상에 던지는 최후의 메시지입니다. 그러한 메시지를 통하여 죽어서도 태우는 정신의 불꽃과도 같은 것 일 것 입니다.


이것이 죽음과 함께 씻기거나 잊히지 않는 건 죽음을 통해 세상과 결별하는 그 기록의 시점 때문일 것입니다. 백조가 최후에 단 한번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울 듯, 인간도 죽음을 예감하고야 실핏줄 끝까지 진솔해집니다. 누군가의 발가벗은 외침 앞에서 산 자는 옷깃을 여미고 때로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가려온 가면 뒤의 허공을 모골이 송연하게 바라봅니다. 진솔된 마지막 외침을...


우리가 묘비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매듭에 대한 욕망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자신은 결코 죽음의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것입니다. 단지 먼저 죽어간 페이지를 뒤적일 수 있을 뿐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각기 다르게 웅크리고 있는 죽음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 그리고 그 죽음들 속에서 삶을 거꾸로 비추어 보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일 것입니다.


여기 간결한 한마디로 이 세상 터에 마지막 훌륭한 외침을 남긴 묘비명들을 뒤적여 봅니다.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모든 것을 다 이룬 세계적 대 문호 조차 힘을 다해 살아 놓고도 인생 막바지에 무슨 여한이 이리 남았을까요? 그는 94세에 운명했지만 묘비명은 그가 죽기 훨씬 이전에 미리 써 놓았다고 합니다.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명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 여기에 잠들다.”입니다. 여기에서 리더에게 요구되는 수완이나 신망, 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리더는 모든 점에서 부하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닙니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은 부하를 장악하는 수완과 덕입니다. 일에 필요한 능력, 현명함 자체는 하인이나 스텝에게서 얻으면 됩니다. 이처럼 리더와 부하의 일은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기의 여간첩으로 유명했던 마타하리의 묘비명엔

“마르가르테 게르트루드 젤러”라고 쓰여 있다던데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바로 그녀의 본명이랍니다. 평생 거짓이름으로 살다가 죽어서야 비로소 자기의 이름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걸레스님이라는 별명처럼 기행(奇行)으로 이름을 날린 승려이자 화가 중광, “괜히 왔다 간다.”는 묘비명을 남겼습니다. 실컷 여한 없이 살았다고 생각한 그의 파격적인 삶조차 만족스럽지 못한 게 인생이라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광의 한마디는 어떤 장문의 연설보다 긴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천상병 시인의 묘비에는 유명한 “귀천(歸天)”의 한 구절이 쓰여 있습니다. 삶이란 “세상 소풍이었을 뿐이며 죽음을 통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삶을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간 것 뿐“ 이라고 보았고 아울러 그의 시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읊었듯이 그는 죽음을 아름답게 인식하는 생사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시편에 나온 한 구절 “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는 묘비명을 통해 소임을 다한 종교인의, 거릴 것 없이 홀가분한 생사관을 보여주었습니다.


1992년 은퇴당시 묘비명을 어떻게 쓰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곧 돌아오겠습니다( I will be back soon.)고 쓰겠다고 말한 미국 심야토크쇼 진행자 자니 카슨은 죽음도 꺾지 못할 투철한 직업의식을 보여줍니다. ‘”I will be back soon"은 카슨이 토크쇼 중간광고 전에 하던 말입니다.


게그우먼 김미화씨는 자신의 묘비명을 “웃기고 자빠졌네.”로 정했습니다. 그의 지인 중 한 사람은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일을 한 사람에게 내뱉는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말을 듣지 않게끔 잘 살라는 충고인 듯해 뜨끔했다.“고 합니다.


소설가 공지영이 미리 써둔 묘비명은 “나, 열렬하게 사랑했고, 열렬하게 상처받았고, 열렬하게 좌절했고, 열렬하게 슬퍼했으나 모든 것을 열렬한 삶으로 받아들였다.”입니다 작품을 통해 그의 불꽃인생을 만나본 분들이라면 이만큼 적절한 토로도 없다면서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월드비젼 긴급구호팀장이자 여행가인 한비야씨가 미리 써둔 모비명은  “몽땅 다 쓰고 가다.”입니다. 어떤 편견에도 매이지 않고 매순간 인생을 남김없이, 미련 없이,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 삶을 마감할 때 위와 같은 훌륭한 묘비명을 남길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굳이 묘비명을 남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도 있을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세상을 더럽히는 인간의 오욕으로 식(食), 색(色), 명예(名譽), 물(物), 수면(睡眠)을 꼽습니다.


욕심의 크기는 사람에 따라, 삶의 고비마다 다릅니다. 대체로 나이가 들면서 네 가지 욕심은 사라지는데, 유일하게 남아 더 집착하게 되는 욕심이 명예욕이라 합니다.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욕심입니다. 죽어서도 놓지 못하는 명예욕의 상징이 묘비명일 것입니다. 그래서 묘비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묘비명을 지어보는 것이 망측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굳이 늙은이들만의 일도 아닐 것입니다.


묘비명쓰기는 정신없이 휩쓸려 가는 세속의 흐름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 거리를 갖고 삶을 조망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 유효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욕망에 흐려져 있는 삶의 참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죽음의 시점으로 몇 발 앞서 가보는 것입니다. 삶의 한복판에 묘비명을 세우는 것은 더 나은 죽음 준비를 통해 삶 자체를 살찌울 수 있는 일입니다.


묘비명의 사전적 의미는 묘비에 새겨 고인을 기념하는 시문이나 명문입니다. 유족이 잘 아는 명망가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본인 스스로 써 둘 수도 있습니다. 묘비명은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쓰지만 보통사람들도 쓴다고 합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나의 마지막 외침으로 무엇을 전할까?

이 다음 당신의 묘비명에 어떤 말이 쓰여 지길 바라십니까?

훗날 내가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다른 사람이 나의 묘비명을 봤을 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죽고난후 묘비명에 좋은걸 쓰기 원할 것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먼저 써 놓은 다음 그렇게 남기기 위해 더 열심히 산다거나 아님 죽고 난후 누군가 쓸 때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야할 것입니다.


단 한번뿐인 귀한 삶 당신은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남은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의 묘비명을 적어 봅시다. 우리는 묘비명을 진지하게 생각해 봄으로써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 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묘비명에는 뭐라고 쓸까요? 각자의 묘비명을 하나씩 써 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회의 지도층일수록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을 묘비명을 미리 써 놓고 평생 실천하다가 떠나는 것은 어떨까요? 묘비명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그럭저럭 무의미하게 살아온 사람, ooo, 여기 잠들다.


최소한 이러한 묘비명은 남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이 세상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는 나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가을 단풍만큼이나 아름다운 묘비명을 가슴에 새겨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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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오랫동안 모셨던 직장 선배님(前, 관세청 차장, 한국신용평가정보원 대표이사)께서 3.24일 지인들에게 보내주신 따스한 마음이 담긴 이- 메일입니다. 현재 사모님께서는 뇌졸증으로 의식불명 상태로 여러 해 동안 입원중이시며, 기적같은 쾌유를 위해 간병하고 계십니다. 쾌유를 기도합니다.

출처 : 꿈꾸는 오리의 방주
글쓴이 : 꿈꾸는 파사오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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